고민 상담 하루

요 몇 달, 주변인들 몇 명이 인생 상담을 청해왔다. 사실 나도 내 고민 얘기하고 싶었는데, 얘네들이 계속 지들 얘기만 해서 난 내 고민은 말도 못꺼냈다. 하...

뭐 말이야 거창한 인생 상담이지. 진로 탐구, 퇴사나 이직, 거지 같은 직사 상사 등을 다루는 회사 문제. 바람난 애인이나 짝사랑 같은 연애 문제. 혹은 자본주의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돈 문제...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다. 

한 정신 빠진 지인은 어차피 집을 못 살 것 같아 차를 비싼 걸 샀는데 벌써 후회가 된다고 했다. 

"어쩌죠 형?" 
"어쩌긴. 왼손은 눈 옆에 오른손은 턱 옆에 올려"
"네?"
"응, 가드 올리라고 xxx야."

관장님께 배운 오른훅은 이럴 때 쓰라고 배운 게 아닌데. 관자놀이를 돌릴 뻔 했다.


그러던 중 이 친구들이 내게 상담을 해오는 공통적인 이유를 발견했다. 소위 꼰대 같지 않아서(졸라 만만해서) 좋다는 것이다. 흠, 꼰대라 함은 흡사 오랜만에 집에 방문한 친척들이 "애인은? 결혼은? 취직은? 연봉은? 뭐 그래서 인생은 여전히 나락이고?"라며 내 기분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떠드는 뭐 그런 건가?

분명 난, 저렇게 거칠게 친구들을 대하진 않고 긍정적으로 이야기 해준다. 일례로 자동차로 무려 4년동안 모은 돈을 몰빵한 동생에게는 

"넌 제로베이스에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니 개이득"이라고 해주는 식으로 말이다. 

남자친구가 바람 피우는 것 같다는 이에게는, 너처럼 둔한 애가 그걸 느낄 정도면 세다리 이상일 수도 있다고 조언해줬다. 

그녀는 내게 욕을 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해결책으로는 세상은 넓고 남자는 많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해줬다. 물론 네가 만날 남자는 매.우 극.단.적.으.로 한.정.돼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내게 쌍욕을 시전했다. 

그래. 진실은 아픈 법이지. 그리고 아플수록 성장한다는 말은 대개 뻥일 확률이 높다. 


시시콜콜 사는 얘기를 하는 건 분명히 재밌다. 그리고 자기 삶의 내밀한 고민을 직구로 던져오는 주변 친구들이 고맙기도 하다. 근데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왜냐면 난 그 친구들의 삶의 고민을 어른답게 들어주고 해결하거나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높은 밀도의 인간이 못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투정을 심각하게 듣고 같이 고민 할 수밖에 없는 건 역시, 그들의 삶의 문제가 내 삶의 문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 니들 문제가 대개는 내 문제이기도 하다.

서운함을 말하는 것에 대하여 하루

나이 먹을 수록 누군가에게 섭섭함을 말하는 게 힘들다. 가족, 연인, 친구, 직장 동료. 누구든 상관없이 말이다. 체할 것처럼 나이만 꼬박꼬박 먹어간다. 쳐먹은 나이 만큼 알아가는 사람의 범위는 넓고 풍성해졌는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점점 줄어든다. 

시간이 흐르고 학창시절 친하게 지내던 녀석들은 군대에 가거나 대학을 졸업하거나 취업시장에 내몰렸다. 누군가는 번듯한 학교 나와 취직을 하지 못해 연락이 끊기고, 눈 맞은 여자와 결혼해서 연락이 끊기고. 친구의 여자친구와 바람을 피워서 연락이 끊기고. 뭐 그랬더랬다.

삶의 풍경이 고속도로처럼 휙휙 지나가는데, 나 혼자 완행열차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자 조급증이 머리를 쳐들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처럼, 나 또한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이 없어져 갔다. 세월의 풍경은 무시무시하게 빨랐고, 겁을 쳐먹은 나는 절름발이처럼 걸었다, 멈췄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더이상 뒷걸음질 칠 곳이 없을 때 경제적으로 독립했다. 허둥거리고 삐걱대기만 했던 내게, 부모님이 답답함과 섭섭함을 내비추지 못한 건, 그냥 당신들이 나의 부모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먼저 연락하는 일이 줄자, 누군가에게 서운함을 말하는 일도 줄었다. 남자라서도 아니고, 쿨하고 싶어서도 아닌데. 10대에는 곧잘 친구들에게 징징거리며 서운함을 토로하곤 했었는데. 

쿨한 사람과 쿨하지 못한 사람이 이야기하면 쿨하지 못한 사람은 의지와 무관하게 찌질이가 되고 만다는 걸 알게 된 후 앞가림은 스스로 하는 거지, 라며 자위했다. 

장례식에서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옛 친구에게 왜 연락 안 했냐고 투덜거렸는데, 대뜸 미안하다고 했다. 앞으로도 속상할 일이 많고 서운한 일이 생길 텐데 그 때는 먼저 연락하겠다고 했다. 근데 그 친구는 외국으로 나간다고 했다. 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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