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절반을 보내며 하루

 2017년의 절반은 정말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작년 10월 말 이직해서, 정신 없이 일 했고 아직도 적응 중이다. 사실 앞이 보이질 않는 일이다. 따박따박 돈을 벌어오는 영업사원들 앞에서 기가 죽기도 한다. 난 내가 받는 연봉에 맞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묻자면 한 숨만 나온다. 심지어 내가 하는 일이 잘하는 일인지, 못하는 일인지 판단해 줄 사람도 없다. 영업 하는 회사에서 시도하는 새로운 일이란 변명을 걸어두고라도 영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 프로젝트의 끝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올해가 지나면 알게 되려나. 


 한 명의 여자와 만나고 헤어졌고, 유난히 쓰렸다. 왜냐면 정말 한 점의 조건 없이 내게 잘해줬으니까. 난 그렇게 해주지 못했고. 난 나이를 먹으면서 구력이 높아지는 게 아니고 이기심만 늘어가는 것 같다. 담담하게 마음을 먹으려고 해도 내게 불리한 순간이 생기면 악착 같이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짠할 지경이다. 

 
 친구 한 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했다. 난 100일 휴가 나갔다가 들어와서 정말 절절하게 앓았던 마음의 병이다. 정신병력을 처방 받으려면 군병원으로 이송가야 한다는 말에 쫄려서 그냥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관심사병 된다고 했다. 정말 후천적인 조직에 한 숨밖에 나지 않았다. 친구는 약 먹을 때만 괜찮고 그 이외에는 아직도 우울하다고 했다. 마음의 병도 빨간약 발라서 나을 수 있으면 좋겠다. 

 복싱은 재밌긴 한데, 손목이 자꾸 말썽이다. 스파링 하다가 오른 손목 한 번 삐끗, 얼마 전에는 무리해서 바벨 들다가 왼손을 삐끗했는데, 와 이거 정말 오래간다. 또 얼마 전에는 어깨가 삐끗하고. 성한 구석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 늙어가는 것이 이런 것인가.

착한 게 죄가 된 세상 하루

22일, 토요일에 만나기로 한 친구가 약속을 펑크냈다. 카톡으로 '미안. 일이 생겨서 못나가겠다.'라고 왔다. 씻고 옷까지 다 입었는데? 주말에 일이 없으면 씻는 것도 귀찮아 하는 나는 격분해서 전화를 걸었으나 녀석은 받지 않았다. 

 부들부들...부들부들!!! 

 분노를 풀 곳을 찾다가 오랜만에 위대한 사이버 전사가 되기로 하고, 리그 오브 레전드를 실행시켰다. 

 리그오브레전드란 10명의 유저가 5:5로 나뉘어 서로 상대방의 기지를 부수는 게임이다. 따라서 팀플레이가 핵심인데 게임을 못하는 팀원이 있으면 같은 팀끼리 정치질과 협잡질을 일삼게 된다. 힘을 모아 상대팀을 괴멸시켜야 하는 데 그 와중에 같은 팀의 삽질하는 팀원까지 케어해야 하는 험란한 여정이다. 잘해도 욕 먹고 잘 못하는 더 욕먹는 게임. 이 국회의원 체험하기 같은 참신한 게임성으로 수 년 간 전세계 게임 랭크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 특유의 정(情) 문화도 커서 흥분한 팀원들이 종종 "너 게임을 이렇게 못하는 데, 부모님은 건강하시냐"며 부모님 안부도 물어봐 주기도 한다. 오랜만에 게임을 했음에도 탁월한 동체시력과 게임 센스를 갖췄던 나는, 30대 아재의 빛나는 피지컬을 선보였지만 정치질의 희생양이 됐을 뿐이다. 

 잠시...의식의 흐름대로 쓰다보니 엇나갔다. 

 놀고 있던 중 약속을 깬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난 격분하여, "야 이 xx새끼야. 감히 카톡으로 약속을 깨? 난 딱히 별로 그닥 보고 싶지도 않은 영화를, 함께 봐주면 버선발로 튀어올 것이지. 감히 형님과의 약속을?"이라고 말하자, 

 녀석은 풀 죽은 목소리로 "얼마 전 소개팅으로 만났던 그녀가 자기랑 안 맞는 것 같으니 그만 만나자 했다"고 말했다. 소개팅 하고난 후에도 내가 기억하기만 꽤 여러번 만났으니 당연히 사귀고 있겠거니 했는데 말이다. 

 착한 내 친구는 3살 어린 썸녀를 위해 데이트 코스도 열심히 짜고, 30대의 경제력을 무기 삼아 자가용으로 모셔가기 같은 스킬도 선보이며, 물심양면 정성을 다했는데 말이다. 심지어 꼬박꼬박 존댓말까지 하는 로멘티시스트였는데? 내 친구를 차다니 대단한 용기와 배짱을 가진 여자임은 확실했다. 

 카톡으로 만남의 끝을 고했던 썸녀는 친구의 "왜요?"라는 물음에 성실히 답변했다. 이유인 즉, 나한테 잘해주고, 자신도 호감이 없진 않으나 너무 착하기만 한 것 같아서 별로라는 것이다. 

 너무 착해서 싫다라.  
 
 문득 드라마 미생이 생각났다. 미생에서 극 중 김동식 대리는 한 여성과 소개팅을 하고 나서 그 여성에게 들었던 말과 아주 유사했기 때문이다. 

 "별로 이기적인 것 같지 않아서요." 

 어느덧 이 시대는 착하면 알게 모르게 손해 보는 곳이 되었다. 이 험난한 세상에 잡아먹힐 것 같아 불안해서 미래를 함께 하지 못하겠다는 뼈 아픈 드라마의 대사. 사실 창의적 소개팅 거절 유머로 걸러 들을 수 있으면 그만이지만, '적당히 이기적인 것'도 연애의 조건에 들어가야 하냐는 김동식 대리의 대사에 문득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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